Praise/Martyn Lloyd-Jones

I. 성령안에서 경배하라 Worship in the Spirit

김용만 2024. 12. 25. 21:55

I. 성령안에서 경배하라 Worship in the Spirit

A Sermon on Ephesians 5:19

Originally preached Nov. 22, 1959

말씀 Scripture

에베소서 5:19 Ephesians 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개역개정);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새번역) addressing one another in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 singing and making melody to the Lord with your heart, (ESV) 19 speaking to one another in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 singing and making melody with your hearts to the Lord; [NASB] 19 Speaking to yourselves in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 singing and making melody in your heart to the Lord; [KJV]

설교 설명 Sermon Description

찬양이 교회안에서 불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님이 노래를 통하여 찬양받으시려는 방법에 대하여 주님의 지시는 무엇일까? “성령안에서 경배하라라는 제목으로, 에베소서 5:19을 본문으로 하는 이 설교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박사는 이 질문과 더 많은 질문에 대해 대답한다. 분문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배를 위하여 함께 모일 때 성령이 분명(명백)하게 나타나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 Lord’s instructions for how He is to be praised through song? In this sermon on Ephesians 5:19 titled “Worship in the Spirit,” Dr. Martyn Lloyd-Jones answers these questions and more. In this passage, Paul is concerned with how the Holy Spirit is manifested when believers gather together for worship.

그러나 이 부문에서 바울의 목적은 무엇일까? 모든 교회가 가져야 할 정확한 예배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로이드 존스 박사는 이것이 이런 경우가 아닌 이유에 도움이 되는 설명(주석)을 제공하기 위해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 바울은 여기서 (성령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방법이) 노래에 의한, 특히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에 의한, 기쁨의 통일된 표현이라 주장한다.

But what is his intent in this section? Is it meant to prescribe the exact style of worship that every church should have? Dr. Lloyd-Jones uses Scripture to provide helpful commentary on why this is not the case. Paul here is calling for a unified expression of joy through singing, specifically through “psalms, hymns, and spiritual songs.”

비록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가 같은 말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로이즈 존스 박사는 다른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시는 악기의 연주에 맞추어 부르는 경건한 노래이다. 찬송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마지막으로 노래는 서정시 또는 가사이다, 그래서 바울은 노래가 영적(신령한)”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믿는 사람들의 삶에서 찬양(노래)의 영속성과 중요성에 대한 기록으로 마무리하고, 이 기록은 수천 년의 교회 역사에서 신령한 노래가 그리스도인의 영적 활동 안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지 보여 준다. Though they might sound as if they are the same, Dr. Lloyd-Jones is careful to show the differences. A psalm is a sacred song intended to be sung with the accompaniment of a musical instrument. A hymn is a song of praise to God. Finally, a song is an ode or lyric, which is why Paul describes it additionally as needing to be “spiritual.” Dr. Lloyd-Jones ends with a note on the permanence and importance of singing in the lives of believers, drawing on thousands of years of church history to show why this should have such a vital place in the spiritual walk of Christians.

설교내역 Sermon Breakdown

살펴볼 단락은 에베소서 5:19이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개역개정);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새번역) The passage under consideration is Ephesians 5:19 - Speaking to yourselves in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 singing and making melody in your heart to the Lord.

문맥(에베소서 5:18)은 바울은 술에 취한보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한다. 성령에 충만함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교회 활동에서 기쁨의 표현 안에 그 스스로 나타낸다. The context is Paul exhorting Christians to be filled with the Spirit rather than drunk with wine. Being filled with the Spirit manifests itself in expressions of joy when Christians gather together.

[참조. 술 취함 get drunk with wine vs 성령으로 충만 be filled with the Spirit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And do not get drunk with wine, in which there is debauchery, but be filled with the Spirit,[NASB]

술 취하지 말라. And do not get drunk with wine.

성경은 모든 술 취함을 일관되 게 정죄하지만(23:29-35: 31:4, 5: 5:11, 12, 28:7, 8에 대한 설명을 보라. 참고, 고전 5.11; 4:3), 여기서 바 울은 문맥상 그 시대 이교도의 예배에서 일상적으로 행 해지던 난잡한 술 파티를 특별히 언급한 것이다. 그런 연회가 무아지경 속에서 신들과 교제하게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바울은 그런 일을 "귀신의 잔"이라고 부른 다(고전10:19-21에 대한 설명을 보라). Although Scripture consistently condemns all drunkenness (see notes on Pr 23:29-35; 31:4,5; Is 5:11,12; 28.7,8; cf. 1Co 5:11: 1Pe 4:3), the context suggests that Paul is here speaking especially about the drunken orgies commonly associated with many pagan worship ceremonies of that day. They were supposed to induce some ecstatic communion deities. Paul refers to such as the "cup of demons" (see note on 1Co 10:19,20).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but be filled with the Spirit.

사도행전 2:4; 4:8에 대한 설명을 보라.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통은 술 취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 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성령의 내주(8.9) 또는 성령 이 임하는 그리스도에 의한 세례(고전 12:13)가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을 때 성령께서 그 안에 내주 하시며 성령에 의한 세례를 받기 때문이다. 도리어 바울은 지금 신자에게 지속적으로 성령의 영향력 아래서 살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렇게 하려면 말씀이 그들을 지배해야 하고(3:16에 대한 설명을 보라), 순결한 생활을 추구해야 하며, 깨달은 모든 죄를 고백하고, 자아에 대해 죽으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의식하며 사는 것이며,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이 자기 생각과 행동의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다 (5:16-23에 대한 설명을 보라) 그리스도는 이런 생활방식에 있어 모범을 보이셨다(4:1) See notes on Ac 2:4; 4:8,31; 6:3. True communion with God is not induced by drunkenness, but by the Holy Spirit. Paul is not speaking of the Holy Spirit's indwelling (Ro 8:9) or the baptism by Christ with the Holy Spirit (1Co 12:13), because every Christian is indwelt and baptized by the Spirit at the time of salvation. He is rather giving a command for believers to live continually under the influence of the Spirit by letting the Word control them (see note on Col 3:16), pursuing pure lives, confessing all known sin, dying to self, surrendering to God's will, and depending on His power in all things. Being filled with the Spirit is living in the conscious presence of the Lord Jesus Christ, letting His mind, through the Word, dominate everything that is thought and done. Being filled with the Spirit is the same as walking in the Spirit (see notes on Gal 5:16-23). Christ exemplified this way of life (Lk 4:1).[출처. The Macarthur Study Bibl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바울은 엄격한 전례(예배)를 규정하지 않고 성령 충만한 삶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기쁨과 교제가 성령 충만한 삶의 자연스러운 표현이기 때문에 바울은 공 예배(기독교 예배)로 시작한다. Paul is not prescribing a strict liturgy but illustrating how the Spirit-filled life expresses itself. He begins with corporate worship since joy and fellowship are natural expressions of the Spirit-filled life.

[참고. 사도의 관심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쁨과 행복을 표현하기 위하여 함께 찬양해야 한다는 데 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들은 목소리를 발하여 찬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찬양이 처음부터 기독교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출처. 성경적 찬양.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 이태복 옮김]]

화답하다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 찬양으로 우리안에 있는 행복하고도 기쁜 감정을 서로에게 표현해야 한다. 'Speaking' refers to singing, not just speech. It means addressing one another in song.

시는 신성한 시, 특히 음악 반주와 함께 부르도록 의도된 시를 말한다. 찬송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말한다. 신령한 노래는 신령한 일에 대한 자발적이고 성령의 영감을 받은 노래를 말한다. Psalms refer to sacred poems, especially those meant to be sung with musical accompaniment. Hymns specifically refer to songs of praise to God. Spiritual songs refer to spontaneous, Spirit-inspired songs about spiritual things.

어떤 사람들은 예배에서는 오직 시편만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Some argue only psalms should be sung in worship, but:

에베소 교회는 주로 시편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들이었다,The Ephesian church was mainly Gentile, unfamiliar with the psalms.

초기 교회 역사는 다른 찬송이 불렸음을 보여 준다. Early church history shows other songs were sung.

이 구절은 '주님'(예수님)께 노래하는 것을 언급하며 새로운 시편 작시를 제안하고 있다. The passage refers to singing to 'the Lord' (Jesus), suggesting new compositions.[참고. 이제 너희는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 에 너희 안에는 큰 기쁨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함께 만날 때마다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하라. 만일 옛날 이스라엘 사람 들이 불렀던 시편 찬송을 안다면, 그것을 함께 불러라. 그리 고 너희 중에 누군가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송축하는 찬송을 만들었다면, 그것을 함께 불러 라. 다른 사람들도 너희의 찬송에 참여하게 하라." 저는 이 해석에 동의합니다. 여기에서 노래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감동을 받고 즉흥적으로 발산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앞에 서도 말씀드렸지만, 성경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자기에게 이 루어진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진리를 갑자기 깨닫고서 감격하여 노래를 터뜨리는 경우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출처. 성경적 찬양.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 이태복 옮김]]

고린도전서 14장은 예배에서 다양한 간절한 표현을 보여주는데, 그 중에는 자발적인 찬송시 낭송도 포함된다. 1 Cor 14 shows various contributions in worship, including spontaneous psalms. [참고. 지금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기여할 어떤 것을 적어도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찬송시를,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말씀을, 어떤 사람은 계시를, 어떤 사람은 방언을, 또 어떤 사람은 방언 통역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한 사람씩 순서대로 자신에게 있는 것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은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큰 기쁨과 영광과 행복을 함께 누립니다. [출처. 성경적 찬양.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 이태복 옮김]]

시편만 노래하도록(찬송시 노래하는 것을 제한) 하는 것은 기도와 설교, 예술, 찬송에 영감을 주시는 성령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Limiting singing to psalms limits the Spirit, who inspires prayer, preaching, art, and hymns. [참고. 성령은 찬송 작가에게 능력을 주시어 새로운 찬송을 만들어 내게 하시며, 미술가에게 능력을 주시어 하나님의 영 광을 표현하는 멋진 그림을 그려 내도록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동일한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여러분은 헨델 Handel이 그 유명한 작품 메시야'를 작곡하게 된 일화를 알고 있습니까? 헨델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그 대작을 불과 몇 주 사이에 완성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헨델은 그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곡을 작곡 할 때 마치 모든 하늘이 내 앞에 열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 았다." 헨델이 그렇게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 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는 사실입니다. [출처. 성경적 찬양.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 이태복 옮김]]

찬송에 반대하는 주장은 즉흥적인 기도와 예배에도 반대한다. The argument against hymns also argues against extemporary prayer and worship.

부흥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할 때마다 새로운 찬송들이 종종 생겨나게 한다. 찬송을 통해 또한 부흥이 일어났다. Revivals, when the Spirit moves, often inspire new hymns. Hymns have also sparked revival.

초기 교회 모임은 오늘날의 전형적 공식(한없이 냉랭한 영적상태에서 진행되는) 예배와는 달리 즐겁고 자발적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바울은 무질서에 대해 경고해야만 했지, 엄숙하고 지루한 전례(예배)를 지시했던 것은 아니다. The early church meetings were joyful, spontaneous, and Spirit-led, unlike typical formal services today. Paul had to warn against disorder, not prescribe a strict liturgy.

우리는 율법주의(관료적 형식주의)로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질서와 예의는 과도함을 억제하지만 표현을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다양한 모습으로 찬양과 함께) 넘쳐나야 한다. We must avoid quenching the Spirit with legalism. Order and decency restrain excess, but do not prohibit expression. Spirit-filled churches should overflow with praise in various forms.